이달의 작가

이달의 작가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저자 김재식 작가 인터뷰
  • 질문아픈 아내의 곁을 지키면서 간병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 답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지요. 그냥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망과 하소연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진단도 되지 않는 이상한 질병(나중에야 희귀난치병인 걸 알게 되었어요)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증상들을 기록하는 일이 글쓰기의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한 2년쯤 지나니까 상황이 좀 차분하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리의 처지가 어떤지, 어떻게 이 상황을 이해하고 어떤 마음으로 견뎌 나가야 할지 이유도 만들어야했고, 남들은 어떻게 이런 경우를 살아냈는지 들어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점점 지금의 모양을 갖춘 간병일기를 쓰게 되었어요.
  • 질문책에는 힘든 상황들 속에서 느끼셨던 감정들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 답변
    손을 뻗었는데 그보다 조금 더 멀어서 잡을 수 없는 느낌처럼 막막하고, 자신을 참 무기력하게 생각했던 순간 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내가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입에 달고 하루 이틀 숨쉬기 연습만 하고 있는데, 면회 라고 가능한 것이 하루에 두 번, 고작 30분이 주어져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다가 나올 때, 아내가 나를 보면서 말도 못하고 눈물이 뺨으로 주룩 흘러내리는 걸로 하고 싶은 마음을 대신 표현할 때, 또 둘째 아들이 ‘미치겠 어요.’라고 말했을 때, 막내딸이 밤늦게 전화해서 ‘아빠 언제 돌아와?’라고 했을 때처럼 내가 있으나마나 아무 문제도 해결을 못해주고, 대답조차 해 줄 말이 없어 침묵할 때가 가장 괴로웠지요. 세상에는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있고, 그렇다고 죽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수용하고 버티는 순간이 있구나 싶었습 니다.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는 느낌이랄까요.
  • 질문아내 분이 아프시기 전과 후를 돌이켜 보았을 때, 선생님의 삶에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답변
    아프기 전에는 아내가 나를 만나서 행복하고 운이 좋은 여자라고 스스로 착각하며 살았지요. 그때는 간도 붓고 눈은 잘 안 보이는 환자였지요. 아내가 아니라 제가요! 그런데 아내가 아프면서 왜 아프게 되었을까를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 난치병의 3대 원인으로 추정하는 것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게 ‘스트레스‘ 라는 점이 자꾸 걸렸어요. 그러다가 아내가 결혼 생활 20년 동안 크게 행복하지 않았고 마음 놓고 웃으며 산 기억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그래서 내가 원인제공자임을 깨닫고, 나는 죄인이다 자인하면서 이제 남은 시간 동안 그 빚을 갚겠다고 그랬지요. 이후 병원을 떠도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이 숱하게 아내에게 말했어요. ‘참 좋은 남편을 둔 행복한 아내라고.’ 그래서인지 아내는 자주 웃는 모습을 보이고, 미안함이 고마움으로 변하면서 몸은 신음과 비명을 지르지만 그늘졌던 심사는 회복이 되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내가 아내를 제대로 사랑하고, 나도 아내에게 사랑을 받는구나 싶었어요. 무려 결혼하고 20년도 더 지나서!
  • 질문 언론에서 ‘3시간 남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책에서는 스스로를 ‘하루살이’라고
    언급하셨는데, 새로 생긴 별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답변
    ‘3시간 남편’은 순전히 의학적인 결과물이지요. 아내의 마비된 배뇨 배변 기능 때문에 그 이상은 자리를 비울 수 없어요. 물론 소변주머니를 달아주면 좀 더 시간을 늘릴 수는 있지만 부작용 때문에 거의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처리 외에도 식사문제도 있고 다른 손길도 필요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곁을 비울 수 없어요. 3시간 이상 떠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을 결정할 때는 3시간 이내를 기준 으로 합니다. 그 이상은 불가! 그러면서 당연히 모든 활동이 거의 중지되었지요. 사회적 활동, 지인들과의 만남, 개인 취미생활도. ‘하루살이’에는 좀 더 깊고 다양한 이유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의학적 상황 외에도 병원비 등 돈 걱정과 자녀들 뒷바라지, 병원 떠돌이와 주거지 문제가 포함된 생활대책 등 멀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담아서 쓴 표현이었지요. 많은 꿈이 박탈된 제 처지를 너무도 잘 표현해 주는 단어인 거 같습니다. 마냥 행복한 상황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저의 경우 ‘3시간 남편’일지 몰라도 세상엔 2시간 아내와 남편들, 심지어 잠시도 곁을 비울 수 없이 가족을 돌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별명은 그것조차 호사고 자랑이라 한편으로는 죄송한 별명인 것 같습니다.
  • 질문 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면서 간병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되셨을 거 같습니다. 아픈 가족을 두고
    간병을 시작해야 하는 많은 분들에게 당부해 주고 싶거나 이것만큼은 꼭 얘기해 주고 싶은 내용이 있으신가요?
  • 답변
    제 간병 경력은 그저 날마다 지치지 않게 버티는 방법을 찾고 훈련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질병에 대한 요령이야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더 잘할 것이고, 생활부분 요령이야 대한민국 살림꾼들인 아주머니들을 따라갈 길이 없지요. 하지만 이 부분 하나는 조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환자의 병이 가져오는 증상과 치료 범위를 숙지할 수 있을지, 그걸 알아내는 요령과 환자나 보호자인 가족들이 롤러코스터처럼 몰려오는 불안과 두려움, 예민한 마음들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한 요령입니다. 그것이 특별한 건 아니고, 어느 때는 포기 하고, 어느 때는 의욕을 돋우고, 또 어느 때는 먹고 걷고 울기도 하면서 순간을 넘기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정말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회복! 이나, 또는 무조건 비관만으로는 생활이 되어버린 장기 투병을 견뎌내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그 두 가지 태도 모두 시한부 폭탄과 같으니까요. 조금 품질이 나빠진 일상 생활, 혹은 조금 더 나빠진 안타까운 일상생활 정도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사람처럼 살게 되지 않을까요?
  • 질문 책에는 건강하게 잘 자라준 자식들에 관한 에피소드도 눈에 띱니다. 자식들에게 제일 고마운 점과
    미안한 점 그리고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답변
    인생의 중간 이상을 그래도 무난하게 살아낸 사람들에게 찾아온 죽고 사는 문제들이야 사실 받아들일 수 있습 니다. 좀 안타깝고 좀 슬프지만 뭐 100% 사망률을 가진 인간의 수명을 생각하면 좀 빠르고 늦는 차이일 뿐 이니까요. 하지만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고 가족이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 시기의 자녀들은 다른 경우입니다. 저는 부모가 되어서 그 시기를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했지요. 의도나 불성실이 아니라 무작위로 닥친 질병 때문 에,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이들에게 멍에를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참 마음이 아픕니다. 큰 후원자가 되고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해도 고통은 주지 않았어야 하는데 먹고 자고 생활하는 기본 자리마저 깨버린 것이 두고두고 미안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지요. 세 아이 모두 찌들어 버린 일상에 화가 무지 날 때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할 말은 이것 뿐입니다. ‘고맙다, 진짜 고맙다!’ 저는 아이들에게 다른 부탁이나 간섭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모든 결정과 선택들을 존중해 줍니다. 아프기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 질문 마지막으로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답변
    먼저 책을 잘 만들어 준 출판사나, 예쁘고 밝은 그림을 제공해 주신 화가님께 고맙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마운 분들은 내가 쓴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들입니다. 남의 이야기, 남이 신나게 산 이야기도 아닌 무겁고 슬펐던 이야기를 시간을 내서 읽어 주고 공감해 주신다는 건 저에게 큰 자비입니다. 책 한 권 읽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이웃을 향한 사랑이고 보이지 않는 응원이며, 잘하고 있다는 격려가 되어 줍니다. 책의 출간이 지난 일에 대한 평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투병과 간병 생활에도 큰 힘이 될 거라 믿습니다. 저나 아내만 아니라 비슷 한 고난의 생활을 견뎌 내는 모든 가족들에게 보내는 사회의 힘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