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지요. 그냥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망과 하소연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진단도 되지 않는 이상한 질병(나중에야 희귀난치병인 걸 알게 되었어요)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증상들을 기록하는 일이 글쓰기의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한 2년쯤 지나니까 상황이 좀 차분하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리의 처지가 어떤지, 어떻게 이 상황을 이해하고 어떤 마음으로 견뎌 나가야 할지 이유도 만들어야했고,
남들은 어떻게 이런 경우를 살아냈는지 들어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점점 지금의 모양을 갖춘 간병일기를 쓰게 되었어요.
손을 뻗었는데 그보다 조금 더 멀어서 잡을 수 없는 느낌처럼 막막하고, 자신을 참 무기력하게 생각했던 순간
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내가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입에 달고 하루 이틀 숨쉬기 연습만 하고 있는데, 면회
라고 가능한 것이 하루에 두 번, 고작 30분이 주어져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다가 나올 때, 아내가 나를 보면서
말도 못하고 눈물이 뺨으로 주룩 흘러내리는 걸로 하고 싶은 마음을 대신 표현할 때, 또 둘째 아들이 ‘미치겠
어요.’라고 말했을 때, 막내딸이 밤늦게 전화해서 ‘아빠 언제 돌아와?’라고 했을 때처럼 내가 있으나마나 아무
문제도 해결을 못해주고, 대답조차 해 줄 말이 없어 침묵할 때가 가장 괴로웠지요. 세상에는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있고, 그렇다고 죽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수용하고 버티는 순간이 있구나 싶었습
니다.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는 느낌이랄까요.
아프기 전에는 아내가 나를 만나서 행복하고 운이 좋은 여자라고 스스로 착각하며 살았지요. 그때는 간도
붓고 눈은 잘 안 보이는 환자였지요. 아내가 아니라 제가요! 그런데 아내가 아프면서 왜 아프게 되었을까를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 난치병의 3대 원인으로 추정하는 것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게
‘스트레스‘ 라는 점이 자꾸 걸렸어요. 그러다가 아내가 결혼 생활 20년 동안 크게 행복하지 않았고 마음 놓고
웃으며 산 기억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그래서 내가 원인제공자임을 깨닫고, 나는 죄인이다
자인하면서 이제 남은 시간 동안 그 빚을 갚겠다고 그랬지요. 이후 병원을 떠도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이
숱하게 아내에게 말했어요. ‘참 좋은 남편을 둔 행복한 아내라고.’ 그래서인지 아내는 자주 웃는 모습을 보이고,
미안함이 고마움으로 변하면서 몸은 신음과 비명을 지르지만 그늘졌던 심사는 회복이 되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내가 아내를 제대로 사랑하고, 나도 아내에게 사랑을 받는구나 싶었어요. 무려 결혼하고 20년도 더 지나서!
‘3시간 남편’은 순전히 의학적인 결과물이지요. 아내의 마비된 배뇨 배변 기능 때문에 그 이상은 자리를 비울
수 없어요. 물론 소변주머니를 달아주면 좀 더 시간을 늘릴 수는 있지만 부작용 때문에 거의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처리 외에도 식사문제도 있고 다른 손길도 필요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곁을 비울 수 없어요. 3시간
이상 떠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을 결정할 때는 3시간 이내를 기준
으로 합니다. 그 이상은 불가! 그러면서 당연히 모든 활동이 거의 중지되었지요. 사회적 활동, 지인들과의 만남,
개인 취미생활도. ‘하루살이’에는 좀 더 깊고 다양한 이유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의학적 상황 외에도 병원비 등
돈 걱정과 자녀들 뒷바라지, 병원 떠돌이와 주거지 문제가 포함된 생활대책 등 멀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담아서 쓴 표현이었지요. 많은 꿈이 박탈된 제 처지를 너무도 잘 표현해 주는 단어인 거 같습니다. 마냥 행복한
상황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저의 경우 ‘3시간 남편’일지 몰라도 세상엔 2시간 아내와 남편들, 심지어 잠시도 곁을
비울 수 없이 가족을 돌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별명은 그것조차 호사고 자랑이라 한편으로는
죄송한 별명인 것 같습니다.
제 간병 경력은 그저 날마다 지치지 않게 버티는 방법을 찾고 훈련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질병에 대한 요령이야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더 잘할 것이고, 생활부분 요령이야 대한민국 살림꾼들인 아주머니들을 따라갈 길이
없지요. 하지만 이 부분 하나는 조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환자의 병이 가져오는 증상과 치료
범위를 숙지할 수 있을지, 그걸 알아내는 요령과 환자나 보호자인 가족들이 롤러코스터처럼 몰려오는 불안과
두려움, 예민한 마음들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한 요령입니다. 그것이 특별한 건 아니고, 어느 때는 포기
하고, 어느 때는 의욕을 돋우고, 또 어느 때는 먹고 걷고 울기도 하면서 순간을 넘기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정말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무조건 회복! 이나, 또는 무조건 비관만으로는 생활이 되어버린 장기
투병을 견뎌내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그 두 가지 태도 모두 시한부 폭탄과 같으니까요. 조금 품질이 나빠진 일상
생활, 혹은 조금 더 나빠진 안타까운 일상생활 정도로 인정하고 살아가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사람처럼
살게 되지 않을까요?
인생의 중간 이상을 그래도 무난하게 살아낸 사람들에게 찾아온 죽고 사는 문제들이야 사실 받아들일 수 있습
니다. 좀 안타깝고 좀 슬프지만 뭐 100% 사망률을 가진 인간의 수명을 생각하면 좀 빠르고 늦는 차이일 뿐
이니까요. 하지만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고 가족이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 시기의 자녀들은 다른 경우입니다.
저는 부모가 되어서 그 시기를 제대로 보장해 주지 못했지요. 의도나 불성실이 아니라 무작위로 닥친 질병 때문
에,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이들에게 멍에를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참 마음이 아픕니다. 큰 후원자가 되고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해도 고통은 주지 않았어야 하는데 먹고 자고 생활하는 기본 자리마저 깨버린 것이 두고두고
미안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지요. 세 아이 모두 찌들어 버린 일상에 화가 무지 날 때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할 말은 이것
뿐입니다. ‘고맙다, 진짜 고맙다!’ 저는 아이들에게 다른 부탁이나 간섭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모든
결정과 선택들을 존중해 줍니다. 아프기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먼저 책을 잘 만들어 준 출판사나, 예쁘고 밝은 그림을 제공해 주신 화가님께 고맙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마운
분들은 내가 쓴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들입니다. 남의 이야기, 남이 신나게 산 이야기도 아닌 무겁고 슬펐던
이야기를 시간을 내서 읽어 주고 공감해 주신다는 건 저에게 큰 자비입니다. 책 한 권 읽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이웃을 향한 사랑이고 보이지 않는 응원이며, 잘하고 있다는 격려가 되어 줍니다. 책의 출간이 지난 일에 대한
평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투병과 간병 생활에도 큰 힘이 될 거라 믿습니다. 저나 아내만 아니라 비슷
한 고난의 생활을 견뎌 내는 모든 가족들에게 보내는 사회의 힘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