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함과 무료함, 적막과 고요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심심함을 주고 싶었습니다. 심심함을 잃어버린 삶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삶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사회가, 직장이, 조직이 만들어 놓은 삶을 따라
살게 됩니다. 조직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 꼼짝 없이, 그리고 정신없이 살아가게 되지요. 우리들의 삶이 왠지
쓸쓸하고 공허한 것은 헛짓을 하기 때문입니다. 헛짓이란 자기 마음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삶이지요.
자본의 논리대로 사는 삶이 아닌 자기의 삶을, 자기가 자기의 주인인 삶을 찾아 살려면 심심해야 합니다. 심심
해야 세상이 바로 보이고 자기 자신이 바로 보여야 자신을 세상에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어느 심심한 날을
위한 책입니다.
저기 내리는 눈송이 하나가 예술입니다, 내가 걷는 발걸음 하나가 예술이지요. 밥을 차려 놓은 것, 지금 당신들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일거리가 예술이지요. 숨 쉬는 일이 사는 일이 다 예술입니다. 예술가들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예술로 가져 옵니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자세히 보세요. 저기 서 있는 나무 아래에 있는 사람을 그리며
그림이고 찍으면 사진이고 시로 쓰면 시지요. 예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자세히 보면 다
예술입니다. 예술을 차지하고 ‘이게 예술이다’라고 하는 예술가들만의 예술은 삶의 예술이 아니고 예술을 위한
예술입니다. 자, 지금 바로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가 찍으면 사진이 됩니다.
그림은 오래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요. 그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 그림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생각을 얻게 되었지요. 나는 세상의 모든 풍경을 다 그림으로 봅니다.
화가는 인간들이 사는 어떤 풍격을 똑 떠다가 그릴 뿐입니다. 나는 인간의 영혼이 담긴 성실하고 착한 그림을
좋아합니다. 한 장의 그림 앞에 서면 그림을 그린 사람의 영혼이 내 영혼을 흔드는 그림이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
유명한 그림이 좋은 그림이 아니라 정성을 다한 그림 앞에 나는 감동합니다. 살아 있는, 영혼을 살리는 그림이
좋지요.
호기심입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입니다. 세상을 자세히 보는 눈이지요. 하찮은 삶을 돌보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지요. 해지면 집에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식구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식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아야 모든 일들이
잘 됩니다. 아내와 이야기를 많이 해야 좋은 생각이 많이 우러나옵니다. 창의와 창조는 식구들과 노는 시간이
많을 때 가장 왕성합니다. 진심, 정직, 진실, 감동, 신비로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삶의 추구입니다. 정직과
진실이 통하고 마음을 줄 수 있는 진심에 대한 괴로움이 정신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줍니다
답이 없습니다. 못 말리지요. 나는 서울 사람들에게 책을 보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한강을 보라고 하지요. 한강처럼
외로운 강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보지 않은 풍경은 외롭고 쓸쓸하고 불쌍합니다. 버림받은 사람처럼요. 모두
스마트 폰을 쳐다보느라 노을 지는 한강을 바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강을 바라보지 않다가 나중에는 자기
애인도 바라보지 않게 될까 걱정입니다. 바라봐 주지 않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서울에 가서
한강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나의 고백입니다.